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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사는 이야기

"올려주진 못할망정 연봉을 깎아달라니요…"

by 조앙마두 2023.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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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힘든 한 해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결코 쉬운 순간이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2023년은 유독 아프게 다가온다. 개인적인 부분은 물론 직장에서의 삶도 하루하루가 폭풍 같이 흘러간다. 일도 일이지만 역시 제일 힘든 것은 '사람'임을 뼈저리게 깨닫는 요즘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직 사유가 되는 것은 바로 사람 아니던가. 역시!

 

 

주변 상황에 휘둘려 '나란 사람의 자존감'이 상처받고 있는 요즘, 갑작스레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연도, 지연도 아니지만 일을 하며 알게 돼 후배다. 동종 업계에서 일하다가 최근 몇 년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연락이 소원해진 친구다.

 

 

"선배! 제가 내일 선배네 회사 근처에 일이 있어서 들릴 예정이에요. 혹시 내일 시간되시면 점심이나 티타임 할까요?"

 

 

수줍은 듯 몇 년만에 온 후배의 갑작스러운 톡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쉽게도 점심은 선약이 있어 오후에 가볍게 티타임을 갖기로 했다. 후배는 잘 지내고 있는지, 건강은 이상 없는지 궁금한 것들이 많았지만 내일로 기약하고 짧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약속 시간에 맞춰 회사 인근 커피숍에 자리를 잡은 후배는 도착했다며 연락을 해왔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을 부랴부랴 정리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가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줄 쿠키도 샀다. 비록 선약이 있어 밥은 사주지 못했지만,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쿠키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그런 그의 얼굴에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림자가 보였다.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조만간 퇴사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알고 보니 회사가 사정이 어렵다며 연봉을 깎아달라고 요청했단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서인지 너도 나도 죽는 소리를 하는 요즘이지만, 직장인에게 연봉 삭감이라니 난감할 따름이다. 속으로는 열불이 났지만, 화가 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얼마나 깎아달라는 건데?"라고.

 

 

알고 보니 후배 회사 대표는 백 단위도 아니고, 무려 천만 원 단위의 연봉 삭감을 요청했다. 직장인이라면 모두 안다. 매년 연봉 인상률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사실을. 그뿐인가. 연봉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직 외에는 답이 없을 정도로 오르지 않는 게 연봉이란 것을. 심지어 어떤 해는 회사 사정이 안 좋다며 임금 동결을 통보한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인상률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천만 원 단위의 삭감은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후배는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워낙 개인주의가 심하다보니 일을 하다 만나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일도 별로 없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올해 나를 괴롭히던 삶의 무게들이 다르게 다가왔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가장 힘들 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겪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란 얘기는 아니다. 누군가는 이 상황으로 인해 공황장애가 왔고, 누군가는 부당함을 토로하기 위해 인사팀에 호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으니 그 무게는 제법 무겁다. 

하지만, 후배가 처한 상황이 내 일인 것 마냥 속상하고 더 무겁게 다가왔다. 과연 나라면? 게다가 책임져야 할 가족까지 있다면?

 

 

삶이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던가.

후배에게 힘이 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왔지만, 그것이 과연 위로가 되었을까.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찬찬히 생각해 봤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듯한 표정의 후배였지만, 그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 

 

 

삶의 무게는 역시 모두에게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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