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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3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가 2674만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1만 2000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은 9.4%를 기록,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8월(10.7%) 이후 가장 높게 조사됐다고 한다.
그만큼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시대다. 8,90년대야 좋은 대학만 나오면 어지간한 대기업을 골라서 갈 수 있었다고 하던데, 이제 그런 일은 언감생심 이다.
내가 그런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회사를 관두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첫 6개월은 무조건 인턴기간이라며 15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고 새벽 6시에 출근했다. 사실 150만원은 포장한 금액이다. 세금 떼고 나니 100만원을 조금 넘겼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은 돈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다 '그' 덕분이다.
그날도 여느날과 다름 없는 그저그런 날이었다. 오전 8시가 좀 넘은 시각, 드디어 그가 출근했다. 이 부서의 팀장인 그는 첫 만남부터 나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를 아는데 한 3,4개월 걸렸던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추후에 하기로 하고..
그는 처음 봤을 때 상대방을 좀 놀라게 만든다. 팀장이라고 하기에는 행색이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다. 꼬깃꼬깃한 남방과 바지는, 과연 저 복장이 사회생활하는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의문을 갖게 만든다. 바지 밑단은 무릎 부위가 하도 접혀 일자가 되지 못하고 늘 허벅지 안쪽이 짧은 비대칭을 이뤘다. '그'를 처음본 타 부서 동기가 '노숙자인 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갓 입사했을 때는 몰랐지만 꽤 나이 차이가 나는 아내와 결혼한 덕에 무엇하나 챙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측은해 보인 적도 있지만 이런 순간은 찰나일 뿐이었다.
그런 측은지심을 갖기에는 그 사람은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첫 사회생활에서 좋은 상사를 만나기 꿈꾸지만 난 감히 최악을 만났다고 말하고 싶다. 덕분에 이후 어떤 상사를 만나도 견딜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벌어 내가 써야 하고, 집세도 감당했기에 갓 직장을 구했을 때의 내 형편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언니랑 같이 살고 있고 언니가 많은 부분을 감당했지만 돈을 벌기 시작한 이상 나도 입을 싹 닦을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는 감당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집이 서울이 아닌 친구라면 대부분 나와 비슷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더 힘든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어린 아내는 '그'에게 한달 용돈으로 15만원을 주고 있었다. 추후 30만원으로 올랐는지 명확하게 기억은 나는 않으나 어쨌든 30만원 안팎의 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팀을 이끄는 팀장의 용돈이 15만원 남짓이라니. 자신의 점심값은 과연 낼 수 있을까.
그런 그에게 안 좋은 버릇, 본인에게는 생존을 위한 당연한 버릇이 있다면 늘 자신이 무언가 먹고 싶을 때 부하직원에게 '오늘은 XX이가 쏘는 거냐?'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날도 여느 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더 심했다. 전날 아내와 부부싸움을 했는지 아침부터 심기가 뒤틀린 그는 점심부터 소주를 주문했다. 낚지볶음과 함께 나온 '처음처럼'.
어떻게 직장인이 점심부터 낮술을 먹지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회사에는 의외로 점심에 술을 먹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안 사실이지만 꽤 많은 직장인들이 낮술을 즐긴다.
그리고 '그'는 그날 '나'를 타깃으로 삼았다. "오늘은 니가 쏘는 거지?"라고 말을 건넨 그는 낚지복음과 전 등을 추가로 시키고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벌건 대낮에.
이내 아내와 왜 싸웠는지 넋두리가 시작됐다. 내가 볼 땐 별일 아니었는데 집에서 어지간히 무시를 당하는 듯했다. 요지는 맛있는 음식, 가령 '그'는 햄 마니아였다. 스팸같은 걸 사오면 자신이 찾지 못하는 곳에 넣어둔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먹여야 하는데 맨날 혼자 다 먹어버리니 아내가 감춰둔 것이다. 감춰둔 아내나 그것을 찾지 못하게 숨겼다고 열불내는 그나 웃겨 보였다.
이처럼 이유는 유치했지만 이것이 발단이 돼 싸움을 시작한 그는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우리에게 진상을 부렸다. 그리고 내가 희생양이 됐다.
계산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4명이 먹은 밥값, 술값은 이미 10만원을 훌쩍 넘겼다. 일반 직장인이 점심값으로 10만원을 지불한다고 하면 그건 미친 짓이다. 그것도 월급이 100만원을 간신히 넘기는 나에게는 진짜 '미친 짓'이다.
그런데 그는 진짜로 나에게 계산서를 넘겨주고 유유히 나가버렸다. 아.. 그 벙찐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결국 나는 그날 점심값으로 10만원 이상의 거금을 지불했다. 입사한지 얼마 안됐을 뿐더러 다른 부서 선배들은 막내가 어디서 버릇없게 지갑을 꺼내나며, 회식 후에는 택시비까지 쥐어줬는데 그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겨우 10만원 갖고 뭘 그리 오바냐, 혹은 상상라고 매번 사야하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매번 사주는 상사가 아니었다. 또 당시 내게 10만원은 너무 큰 돈이었다.
그는 그 사건을 계기로 내게 잊을 수 없는 상사로 각인됐다. 그리고 그날의 만행이 다른 것들과 비교했을 때 꽤나 깜찍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킹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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