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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최악의 상사

2. 호두과자 세개

by 조앙마두 2017.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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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인원을 따지면 야근은 일주일에 한 번이 맞는데 막내인 나는 유독 자주 당직을 섰다. 업무상 꼭 한 명은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근무표를 짜서 매일 돌아가면 한 명씩 근무를 하기로 돼 있지만, 당직표를 짜는 제일 고참 선배의 횡포는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그래, 그 정도 연차가 되면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갈 법한 당직을 서기 싫을 것이다. 이때문인지 이 선배의 막가파식 당직표 짜기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팀원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 선배 덕에 또 서게 된 당직 날이다. 밤 11시까지 회사에서 업무를 봐야하기 때문에 혼자 잠깐 틈을 내 혼밥을 먹고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야 어떻게 혼자 밥을 먹지 했지만 이런 생각에 굶다보니 건강이 말이 아니게 됐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라는 생각에 혼자라도 밥을 챙겨먹는 습관이 생겼다.

 

이에 나는 이날도 어김없이 '그'에게 저녁 식사를 하고 오겠다며 잠깐의 외출을 신청했다. 군대도 아닌데 어딜 갈때마다 꼭 보고를 하고 가야하는 이 숨막히는 분위기를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당직은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풀 근무다. 당연히 단 30분이라도 이 감옥같은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자 그에게 돌아온 답변. 역시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올 때 간식 좀 사와라. 좀 출출하네."

 

부원들이 퇴근 전 식사를 하고 와야 하니 오후 5시쯤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출출할 시간이다. 다만 그의 간식을 사오라는 주문에는 돈이 포함돼 있지 않다. 내 돈으로 사가야 한다.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이라 아무것도 사가고 싶지 않았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어쩔 수 없이 안 사갔을 때 들을 잔소리가 싫어 간단히 끼니를 때운 후 무엇을 사갈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눈에 코코호두 과자점이 눈에 띄었다. 가격도 비싸지 않으면서 간식으로 무난할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무실에는 나, 그 그리고 단 한 명의 선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호두과자면 나눠먹기도 편하고 허기도 달랠 수 있는 좋은 간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오늘도 그를 위해 호두과자를 샀다. 마음에도 없는 호두과자를 말이다.

 

역시나 호두과자를 발견한 그의 꾀죄죄한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호두과자 좀 사왔어요. 다같이 먹어요."

 

나는 그에게 가장 많은 호두과자를, 5개는 자리에 앉아있던 선배에게 줬다. 그리고 남은 3알의 호두과자를 내몫으로 남겨놓았다. 

 

저 멀리 앉아있던 그는 우걱우걱 호두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게걸스러운 모습이, 정말 내 취향은 아니다. 어떻게 결혼에 성공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저런 사람과 다른 행성에 떨어진다해도 난 평생 혼자 살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정말 내가 싫어하는 인간의 표본이 됐다.

 

어찌나 급하게 먹던지, 그는 호두과자를 이내 먹어치웠다. 점심밥도 10분이면 뚝딱 해치우는 그를 생각하면 당연한 스피드다. 그의 빠른 식사 속도 때문에 인턴인 후배는 매일 점심 소화제를 먹고 있다. 그만큼 그의 먹방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곧 퇴근시간이 6시가 임박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빨리 가지 왜 그렇게  뭉그적거리는지 속에서 울화통이 났다. 그래도 난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이곳에서 일하며 배운거라곤 아무리 화가나도 무표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재주다.

 

덕분에 난 속과 달리 겉모습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일어나는 순간 뛸 듯이 기뻤다.

 

어렵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어쩐 일인지 바로 가지 않고 내 자리에서 말을 걸었다. 쓸데 없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 말이다. 그리고 이내 그가 내뱉은 말은 어디가서 얘기하면 사람들이 믿지 못할 소리를 했다.

 

"그 호두과자 먹을거니? 배불러서 안 먹는거 같은데."

 

달라는 얘기였다. 척하면 척, 이제 그의 의중을 알 만큼은 됐다. 그래서 나는 배가 불러 괜찮다며 드시라고 웃는 얼굴로 얘기했다. 그렇게 많은 호두과자를 그야말로 '쳐먹고선 또 쳐먹는단 말인가'. 진짜 거지 같은 인간이다.

 

그래도 한편에서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맛있으셨나봐요? 더 드시려는거보니. 다음에 또 사먹어야겠네요."

 

그러자 그는 나를 경악케 만들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늘 상상을 초월한다.

 

"딸 갖다주려고 그래."

 

그러면서 그는 호두과자 세개를 호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렇게 맛있었다면 회사 바로 앞에 있는 호두과자집에서 사다줄 법도 한데 역시 그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의 머릿속을 이해하려면, 아니 알려면 나에겐 아직 많은 수양이 필요한 듯 보였다.

 

딸에게 줄 호두과자를 챙겨 내심 신이 난듯 웃는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그는 보며 난 오늘도 또 한 번 세상을, 사람을 배웠다.

 

 

- 킹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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