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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최악의 상사

4. 다 가져와, 내가 먹어야겠다

by 조앙마두 2017.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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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점심 시간이다. 팀원들이 같이 먹어야 하는 분위기, 팀장이 다 먹고 일어나면 나 역시 먹던 숟가락을 내려 놓아야 하던 상황까지 밥 하나 먹는 것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따로 먹을게요'란 말조차 할 수없는 사회생활 초짜였다.

 

그가 고른 이날의 메뉴는 부대찌개였다. 또 오늘은 누가 돈을 내는 주인공으로 낙점될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그가 고른 메뉴의 식당으로 종종 걸음을 옮겼다.

 

사실 나는 부대찌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 햄을 그닥 즐겨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뉴 선택권이 없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팀원들 모두 좀비처럼 그의 이끔에 따라 부대찌개 집으로 몸을 옮겼다.

 

꽤 오랜 시간 그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알게 된 건 그가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꽤나 초딩입맛이었다는 점이다. 햄을 좋아했던 건 물론이다.

 

이날의 메뉴, 부대찌개가 나오자 그의 일장연설이 시작됐다. 알고 보니 그가 부대찌개를 고른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알고보니 집에서 햄을 많이 먹는다고 적잖은 타박을 받은 다음날이었다.

 

"아니, 내가 가장인데 햄 하나 먹는 것도 눈치를 봐야해! 분명히 마트에서 스팸 사온 걸 봤는데 어디가 감춰뒀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니까. 내가 진짜 왜 돈을 버는 건지. 다 가족들을 위해 버는 건데 가족들을 내가 못 찾게 햄을 감춰두다니 말이 되냐?"

 

그가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햄을 사오면 족족 '올킬' 해버리는 그 때문에 아내가 햄을 찬장 깊숙한 곳에 감춰둔 듯했다. 결국 마음껏 햄을 먹지 못한 그가 이날의 점심 메뉴로 '부대찌개'를 골랐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부대찌개가 끓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가 허겁지겁 햄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게걸스러운 자태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매콤한 걸 먹을 때마다 머리가 젖을 정도로 땀도 흠뻑 흘리는 모습은 언제나 봐도 적응이 안됐다. 얼른 내가 먹을 만큼의 국물을 앞접시에 뜬 후 찌개에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그의 땀이 꼭 그 찌개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찝찝한 기분에 그냥 한 번 뜰 때 많이 뜨고 다시는 손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뺏아 먹을까 허겁지겁 햄을 집어넣던 그는 햄사리를 추가했다. 어지간히 햄이 고팠나보다.

 

"야, 다 가져와. 햄은 내가 좀 먹어야겠다."

 

추가한 햄 사리에 우리가 손이라도 댈까 그는 햄이 땡긴다는 강력한(?) 어필을 하곤, 이내 앞접시가 넘치도록 햄을 담기 시작했다.

 

그는 행복한 얼굴로 우걱우걱 햄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양볼이 터질 듯 많은 양의 햄을 한꺼번에 넣고 말이다.

 

그는 참으로 햄을, 부대찌개 속 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 킹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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