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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최악의 상사

3. 점심은 내가 일어나야 먹을 수 있어!

by 조앙마두 2017.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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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최악의 상사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이 글을 씀으로 인해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친한 누군가에게 실컷 떠들고 나면 속이 풀린다. 나 역시도 그렇다.

 

그와 함께 일한 몇 년의 시간은 당당하고 밝았던 나를 무서운 분위기에 주눅들고 말 없는 아이로 변하게 만들었다.

 

지금이야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했지만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슴에 남아있던 응어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작게 나마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이날도 그의 공포분위기 조성은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다. 오전 8시가 땡 함과 동시에 1분만 늦어도 지각으로 간주되는, 그래서 한 명이라도 늦게 출근하면 그날은 더 지옥 같은 날이 된다.

 

다행히 오늘은 아무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기분이 역대급이라 할 만큼 최악이었다. 간밤에 부부싸움을 격렬하게 했는지 출근하는 순간부터 한숨을 내쉬는 모양새가 일촉즉발의 위기를 느끼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말 없이 연신 1층으로 담배를 피러 다녀오며 팀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아무도 감히 소리내지 못하고 숨죽여 일하는 분위기에서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얼마나 다행이던가.

 

시계는 12시를 향해 흘러갔다. 정말이지 다행이다 싶었다. 간밤에 팀원 몇몇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작한 술 자리가 새벽 2시를 넘긴 시간까지 지속됐기 때문이다. 다들 이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먹고 살기 위해 버티고 있었다. 때문에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고, 어제는 그야말로 그 고통의 정점을 찍었다.

 

술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못 먹는 술을, 어제는 취하도록 마시고 싶었다. 과연 취하면 어떤 기분이길래 사람들이 취하는지, 취하면 당장의 고통이 잠시나마 사라지는지 알고 싶었다.

 

소주를 얼마나 들이켰던가.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2시를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취가 이렇게 혹독한 것인지 누가 말해줬다면 그렇게 들이키지 않았을텐데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결국 다음날 아침 나는 거짓말 조금 보태 지옥을 맛봤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점심 시간을 더 간절히 기다렸다. 어른들이 왜 해장을 하는지 이해가 되는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시계가 12시를 찍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배고픈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1세기에 윗사람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 역시 밥을 먹으러 갈 수 없다니 무슨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기분이었다.

 

12시 5분이 됐을까.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이라도 있는 건가라는 희망을 가져봤지만 그는 별다른 말없이 자리를 떴다. 

 

그는 자리를 떠났지만 우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에게 먼저 점심을 먹으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빨리 무언가 들여보내 달라는 뱃속의 아우성을 꾹 참고 30여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돌아오지도, 연락도 없었다.

 

그러자 A선배도 참을 수 없었는지 우리에게 점심을 먹으라 가자고 얘기했다. 얼마나 기다리던 말인지, 꼭 천상의 말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르르 다같이 일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문이 열리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우리는 무슨 죄라도 지은냥 "저희 점심 먹고 오려고요. 같이 드시러 가실래요?"라며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허락 없이 먼저 일어난 게 기분이 나빴는지 됐다는 말을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우리는 우리끼리 구내식당을 찾았다. 콩나물 해장국 같은 게 먹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빨리 들어가야 할 것 같은지 선배는 바로 음식이 나오는 구내식당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빈 속을 채우고 나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술을 한 번이라도 마셔본 사람은 알거다. 술 마신 다음 날 유독 배가 더 고프다는 것, 또 과음을 했을 경우 해장국이 꼭 필수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헐레벌떡 배를 채우고 1분 1초를 아끼려는 듯 재빨리 회사로 복귀했다. 회사 앞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의 물줄기를 즐기고 있었지만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빨리 자리로 복귀했지만 그의 심기는 더 불편해 보였다. 특히 오늘은 퇴근도 제시간에 할 수 없다. 새로 온 상사분과의 회식 자리가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모두 오후 6시까지 침묵 속에서 근무를 하고 다같이 일어나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아직 본부장님이 오시기 전, 그는 입을 열었다.

 

"니들 입만 입이냐! 너희들끼리만 밥 먹으니 좋냐? 난 굶었잖아!"

 

그가 버럭 화를 내면서 우리를 혼냈다. 우리끼리 자신의 허락도 없이 우르르 밥을 먹으러 갔다며 그는 분노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의 나, 그리고 내 선배들은 왜 점심 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걸까. 우리는 이렇게 한참 혼이 나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서야 그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점심 한끼도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그의 허락을 받아야만 자리에서 움직일 수 있는 강압적인 분위기의 회사. 첫 회사인 탓에 다들 그런 줄 알았던 나의 어리숙함이 내 인생의 최고 황금기일 수 있었던 20대를 잊고 싶은 고통의 시기로 각인되게 만들었다.

 

과연 그는 자신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 킹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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